2014. 8. 22. 22:31

다시 읽어본 `초한지`

한손에 잡히는 초한지 - 8점
최근덕 지음, 주훈 그림/느낌이 있는 책

어릴 때는 책 읽는게 고역이었는데 특히 방학때만 되면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것을 경계한(?) 담임교사들이 꼭 방학동안 책을 3권씩 읽고 소위 `독후감` 이라는 걸 써오도록 방학 숙제를 내주곤 했져. 부담감이 느껴지고 하기 싫은 숙제여서 그런지 독.후.감 이라는 단어는 거부감이 들고 싫어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일기도 마찬가지였는데 아이들이 일기를 뭘 제대로 쓴다고 그 어린 나이에 매일 꼬박 일기를 써라고 하는건지. 이건 어떤 관점에서 보면 `교육의 역효과`가 날 수도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까 독후감도 그렇고, 일기 역시 쓰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나 훈련에 이은 단계적 연습없이 무조건 써오라고만 하니 도대체 어떻게 써야되는지 물어볼데도 없었고, 물어본들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죠.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아이들이 그저 읽은 책의 줄거리를 요약해서 써오기가 일쑤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무턱대고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기만 하는건지 아니면 예전과 달라졌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독후감.. 이라는 말이 싫어 감상문, 서평, 리뷰 등으로 대신하는데 이것과 `일기`는 나중에 어느 정도 커서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굳이 일기라고 하지 않아도 어떤 메모 또는 요샌 블로그도 있고 말이죠. 그리고, 일기는 매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어릴 때는 먼저 쌓아가는 시기라 그저 책을 읽고, 생각을 많~이, 또 그걸 바탕으로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는게 더 중요하고 교육도 그런 식의 접근이 좋다고 봅니다. 그렇게 밑바탕이 어느 정도 다져져야만 거기에서 무언가를 뽑아내도 뽑아낼 수가 있지 동전 넣으면 바로 뭐가 나오는 그런 식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우리네 학부모들.. 급합니다.

당장 결과가 중요하고, 뭐라도 결과물이 나와야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경쟁에 내몰리는 원인이 됩니다. 부모도 아이도 교육 매트릭스에 갇혀버리죠. 진정한 교육은 이기고, 지는 상대적 경쟁에 있지 않습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서 글이 갑자기 무거워졌네요.

서두가 길어졌는데 이렇게 방학 숙제로 처음 독후감을 써본게 바로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인 `초한지`였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읽은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세부적인 단락들이 생각나지 않아 `수호지`와 같이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앞서 읽었던 책 `터널`이 본의 아니게 속독(?)이 되었다면, 이 `초한지`는 재미가 있어서 속독이 된 책입니다. 책 표지에 <한 손에 잡히는> 이라고 되어 있는데 <하루에 잡히는> 책이군요.

이야기는 희대의 장사꾼으로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여불위`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조나라에 비해 국력이 약했던 진나라에서 볼모로 잡혀온 `자초`를 잘 꼬득여 자기의 애첩까지 내어주며 나중에 진나라 왕으로 앉힌 후 승상이 되어 권력을 잡은 여불위. .

이후 군사를 일으켜 달기와 짝짜꿍했던 폭군 주왕의 은나라를 멸하고 세워진 주나라를 860여년 만에 무너뜨립니다. 결국 애첩과의 사이에서 난 자신의 자식이 나중에 진시황이 되죠. 하지만,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해 일을 꾸미는 것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던 여불위의 최후는 좋지 못했으니 그게 다 업보라는.

백성을 무척 피곤하게 했던 폭군 시황제 등극 불과 15년 만에 나라가 기울고 도처에서 봉기가 일어나 초나라에서 출사해 세간의 신망을 얻은 항량(항우의 숙부)과 항우, 나이 40 중반이 되어서도 빈둥빈둥 한량이자 건달로 친구들과 술만 마시면서 대책없이 시간을 보내던 유방, 그외 많은 인물들이 중원 통일을 놓고 점차 땅따먹기와 이합집산으로 세력을 정리 및 확장하는 일들이 펼쳐집니다. 그 과정에서 전투와 공성전, 당연히 수십 만의 군사들을 움직이는 용병술의 백미인 병법, 권모술수, 음모, 흉계, 지략대결 등등이 난무합니다.

이전에는 장자방이라 불리는 `장량`이 제일가는 전략가로 생각되었는데 이건 어떤 노인으로부터 강태공이 남겼다는 병법서를 전수받았다는 전설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만 이번에 다시 읽어보면서 보니까 `진평`이라는 인물도 장량 못지않게 한가닥 했더군요. 둘이서 머리를 맞대면 불꽃이 튀는게 아니라 꽤 괜찮은 전략들이 나왔습니다. 헌데, 오히려 장량보다 대장군 `한신`이 더 대단하게 보이는 점이 있습니다. 숱한 전투를 치루면서 백전 불패를 이루었으니 그 병법은 실로 중원을 호령할만 했겠어요.

한신의 역량이 정말 대단하여 만약 괴통의 `삼분지계` 고언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여 유방처럼 포부를 키웠다면 제갈공명 이전에 벌써 초한지가 아니라 삼국지가 시대에 앞서 탄생해 쓰여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욕심이 없었던 한신은 유방을 위해 수많은 전투를 수행하고, 그를 황제의 자리에 올렸으나 너무나 출중한 재주 때문인지 의심을 받아 결국 토사구팽을 당합니다.

역시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암탉이 `후다닥` 거리면 안돼...  이때, 장량은 이미 이 암탉의 민낯을 알고 인생무상을 느끼며 떠난 뒤였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거 보면 병법서보단 역학점술서가 낫다는 생각도 드네욤. 명나라 건국공신인 유백온도 말년엔 사람의 운명을 연구하는데 전념해 걸출한 저서인 `적천수`를 남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