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 경제 - 화폐전쟁 5권
‘탐욕 경제’의 저자 쑹훙빙은 인류사의 모든 활동이 부의 창조와 분배의 범주를 기본적으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전제를 깔고 논의를 시작한다. 인류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부의 창조를 부단히 연마해야 하는 것 못지않게 부가 정의롭게 분배돼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왜 부의 정당한 분배통로가 경색되고 왜곡되는지 추적한다. ‘잘 사는 꿈’을 향한 똑 떨어진 해결책을 내놓진 않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피해야 할 것을 제시함으로써 우회적 해법을 시도한다.
쑹훙빙은 공격의 칼날을 예의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월가의 금융 권력에 겨눈다. 금융 권력의 탐욕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현재 더 거대한 자산 거품을 초래했지만 그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부의 분열(分裂, 골고루 배분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의미)은 중산층의 소비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켰다”며 ‘저금리 통화정책과 양적 완화로 인해 대량의 염가 자금이 자본적 지출과 고용 창출로부터 괴리되면서 세계 경제회복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3년까지 미국에서 부의 집중이 이뤄진 사례를 제시한다. 이 기간 미국의 ‘국민소득 분배 비율’에서 상위 1%에게 국민소득 증가분의 95%가 돌아갔다. 그는 “미국의 지배집단은 사회 각 분야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독보적인 발언권, 정책 결정권은 물론 국부를 분배하는 대권까지 거머쥐고 있다. 금융위기 발생 이후의 최대 수혜자를 꼽으라면 단연 이들이다. 이들은 양적 완화, 자산 가치 상승, 재정 인센티브, 이전지급 및 달러 발행세 등 다양한 정책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고 지적한다. 그는 “누가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정부의 정책적 실책은 부차적인 원인이다. 금융 세력 집단이 주도한 화폐 정책이야말로 만악(萬惡)의 근원이다.”라고 질책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이 된 탐욕스러운 월스트리트 금융사에 대해서는 이미 세계가 단죄했다. 그러나 그 단죄라는 것이 말뿐이었고 실은 그 반대였다. 미국정부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구제금융으로 그들을 살려냈고 Fed는 초저금리와 양적 완화로 그들이 다시 일어날 터전을 마련해줬다. 의당 징계를 받아야 할 그들은 더 많은 보너스를 챙기면서 활개치고 있다. 월가의 탐욕에 대한 쑹훙빙의 일갈은 그의 전작들, ‘화폐전쟁’ 1~4권 시리즈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것처럼 이 책에서도 분명하다. ‘화폐전쟁’ 시리즈의 다섯 번째 버전인 이 책에서도 그의 날카로운 지적은 계속된다. 월가의 탐욕은 중산층과 서민들의 부를 가로챔으로써 아메리칸 드림을 허망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단언한다.
쑹훙빙은 고삐 풀린 그들을 막을 방도도 크게 기대할 수 없다고 개탄한다. 이를테면, 월가의 탐욕에 대한 집착은 투기 목적의 자기자본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한 ‘볼커 룰’(2010년 7월 도입된 포괄적 금융개혁법 ‘도드-프랭크법’ 내의 핵심 규정)을 무력화하는 데에 그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로비를 했는지 살펴보면 드러난다. 폴 볼커 전 Fed 의장이 제안한 볼커 룰은 원래 4쪽에 불과했다. 그러나 골드만 삭스 등 월가의 은행들은 전직 거물급 의원들과 전직 백악관 및 재무부의 고위관료들을 동원해 ‘월스트리트=워싱턴’ 이라는 고래의 금권천하를 다시 가동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면제조항과 예외조항이 추가되면서 볼커 룰은 298쪽으로 늘어났고(볼커 룰이 삽입된 법인 도드-프랭크법은 더 심하다. 원래 도드 의원이 상정할 때는 56쪽에 불과했으나 이익집단들의 훼방으로 ‘교란 규정’이 추가되면서 발효 2년 후에는 8843쪽으로 늘어났다) 사실상 볼커 룰은 힘을 잃게 됐다. 쑹훙빙은 “100개의 ‘면제 조항’에 1000개의 ‘예외 조항’을 곱하면 10만 개의 불가해(不可解)가 만들어진다”고 개탄한다. 쑹훙빙의 지적은 실제로 맞아떨어졌다. 볼커 룰은 2012년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월가 은행들의 지속적인 로비로 지금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골드만 삭스 등 월가의 거대 은행들이 고위험 고수익 펀드를 계속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등 볼커 룰을 공공연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令)이 서지 않는 룰은 있으나마나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의 정책과 법을 이렇게 무시하고 어기는 월가의 금융 권력들은 어째서 온전할 수 있을까. 당장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쑹훙빙은 책 첫머리 제1장 ‘황금 대학살, 달러 보위전의 서막을 열다’에서 하나의 사건을 제시하며 미국 정부와 Fed, 월가 금융 권력 간의 내밀한 유착관계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4.12 황금 대학살`은 양적완화 정책을 펴고 달러화를 남발해온 미국이 자국 화폐의 가치 하락을 막고자 금 선물가격의 폭락을 의도적으로 유도한 사건이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COMEX)가 개장하자마자 갑자기 금 100톤의 매도주문이 날아든다. 날벼락을 맞은 시장이 2시간여 동안 수습해 안정을 찾아가던 순간 이번엔 대재난이 닥쳤다. 300톤의 매도 물량이 쏟아진 것이다. 이는 2012년 전 세계 금 생산량의 11%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시장은 공포에 휩쓸렸고 금 가격은 온스당 1476.1달러까지 하락했다. 낙폭이 88.8달러로 일일 최대 하락폭이었다.
이는 분명히 일부 세력에 의한 금 선물가격 조작이었다. 이후 금 가격은 오르내렸으나 상승세는 꺾였다. 미국 당국은 이날 금 선물가격 폭락 사태에 대해 조사한다고 밝혔으나 흉내에 불과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누가 일으킨 것인지 오리무중이다. 쑹훙빙은 금 값 급등을 제어함으로써 달러의 가치를 지키려 했던 미국정부와 Fed, 월가 금융의 합작품일 거라는 심중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화폐가 생명력을 잃어도 금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 단언한다. 4.12 금 선물가격 폭락 사태 때 ‘중궈다마’(중국의 아줌마 부대)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일반인들이 현물 금을 사려고 몰려든 현상이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금 선물가격 폭락 등 일반이 예상하거나 이해 못할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이면에는 미국 정부가 있다고 쑹훙빙은 서슴없이 말한다. 달러라는 ‘세계 화폐’를 쥐고 세계 패권을 행사하려는 미국 정부와 Fed의 전략에 월가는 수단이고 그 수단을 갖고 목적에 맞게 부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세계의 패권을 위해서는 강한 달러가 필요하고 강한 달러를 위해서는 경쟁자인 금의 가치를 떨어뜨려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래서 2013년 4월의 금값 폭락을 유도한 것이고 현재도 금을 견제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수단인 월가의 금융 권력과 주체인 미국정부 및 Fed가 손을 잡는 체제가 가동되고 있다고 쑹훙빙은 말한다.
2장 ‘거품의 공간 저 너머에서 밝혀지는 진실’에서는 양적완화가 장기간 지속되면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수익률은 실물경제 수익률을 초과하고, 이 차이가 커질 수록 자금은 실물경제에 흘러들지 않고 자산가치 증식만을 좇게 된다는 점을, 정크본드가 범람하고 있는 미국 채권시장의 기형적인 구도로써 설명한다. 제3장 ‘돈가뭄 사태와 그림자금융의 실체’에서는 금리가 조금이라도 상승할 경우, 자산담보 사슬에 의해 하나로 꽁꽁 묶여버린 세계 각국의 금융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는지 상세한 예를 들어 소개하고 있다.
제4장 ‘금리 화산, 최후의 심판’에서는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상승을 막기 위한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밝히며, 금리 화산이 폭발하고 자산 거품이 붕괴하는 최후의 심판이 머지않았음을 경고한다. 제5장 ‘돌변하는 형세, 월스트리트 부동산 투기꾼 부대가 떴다’에서는 2012년 봄 들어 미국 부동산 시장이 강세장으로 돌아선 이면을 분석한 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압류주택 재고를 싹쓸이한 월스트리트 부동산 투기꾼 부대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쑹훙빙은 금융 수단으로 시장가격의 단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있지만 그 추세를 장기간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또 주택의 잠재 구매자인 젊은이들이 취업난과 학자금 대출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에서 부동산시장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제6장 ‘부의 양극화, 날개 잃은 아메리칸 드림’에서는 지난 35년간 미국의 부채가 10배나 증가한 근본 원인을 살핀다. 재정적자는 부의 50% 이상을 차지한 부자들이 세금을 회피해 생긴 결과이므로 화폐 가치 하락은 금융 권력의 탐욕과 부의 집중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메리칸 드림이 깨지고 있는 상황을 분석한 쑹훙빙은 이것이 되풀이되는 역사의 교훈이라고 말한다.
이어 제7장 ‘탐욕으로 점철된 고대 로마의 쇠망사’, 제8장 ‘북송의 쇠망사, 화려함 뒤에 숨겨진 어두운 이면’, 제9장 ‘차이나 드림이 아닌 것들’에서 오늘날 미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옛날에도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미래 역시 역사 속에 답이 있다며, 인류 최초의 화폐경제를 구가했던 로마와 중국 역사상 최고의 부와 번영을 누렸던 북송의 멸망 과정을 분석하며 ‘차이나 드림’의 가능성을 살핀다. 쑹훙빙은 정치 체제가 자정 능력을 상실하면서 로마와 북송에는 토지 겸병, 조세 불균형, 재정적자, 화폐 가치 하락, 내란과 외환 등의 폐단이 똑같이 나타났고 심지어 위기 발발 순서까지도 똑같았다며 인류의 탐욕은 만고불변하는 역사의 패턴이라고 말한다.
원본 출처 -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40817021099526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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