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6. 17:46

파피용(Papillon).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파피용 (양장) - 8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열린책들

먼 미래에 인류는 쥐처럼 사느냐, 개미처럼 사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소설과 영화가 가지는 여러 장점들 중의 하나로 시간과 공간적 배경의 한계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컴퓨터 CG가 발달한 영화는 물론이고, 책의 지면 또한 작가의 상상을 기술하기에 종이가 너무 작아서 조금 쓰다가 잠이들고 마는 경우는 없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류가 생존을 위해 향후 1~2세기 안에 다른 행성을 찾아 지구를 벗어나야 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인류라는 종이 존속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우리 인류가 또 다른 지구를 찾아 우주를 항해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구와 태양이 수명을 다 하든 그 이전에 인류의 존속에 심대한 문제가 닥치든 말이다. 현재에도 이런 계획이 이미 시도가 되고 있고 기초적인 성과들도 나오고 있는 상태다.

지금 실험을 거치고 있는 방식과는 많이 다른 양상이지만 소설 '파피용'에서는 저자의 상상력이 매우 돋보이는 기발한 방법이 펼쳐지면서 프로젝트가 좀 삐걱거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대체로 잘 굴러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맨 처음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한 사람이 있고, 그것은 보기 좋게 주류의 퇴짜를 맞는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어떤게 정상이고 어떤게 비정상일는지... 지구에 남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어느 쪽이 맞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찾기는 힘들다.

어쨌거나 비주류의 한낱 허황된 꿈으로 묻히기 일보 직전 여기에 우연히 합류하게 되는 자금력을 지닌 괴짜 부호가 있어 그렇게 회사가 설립되고  각 부문의 실력자들이 하나씩 모여 거대한 민간 주도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점점 우주 항해의 꿈은 현실화되어 간다. 그 목적은 인류가 다시 정착할 수 있는 또 다른  지구 행성을 찾는 것.

항상 그렇지만 처음 잡았던 계획은 계속 수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서도 작가적인 상상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어 항해기간은 1,000년, 여행자는 100,000여명으로 까지 늘어나 정확히 144,000명을 선발하게 되고 이 숫자에도 담긴 뜻은 예사롭지 않다. 당연 1,000년이라는 기간은 장난이 아니며 처음 출발할 때 탑승한 사람들은 그 종착역을 보지 못한다. 새로운 인류와 새로운 세상을 위해 첫 발을 내딛는 선구자적인 사람들임과 동시에 이 원대한 계획을 위해 다른 한 편으로는 희생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우주선도 거듭된 연구와 실험을 거쳐 지구와 거의 흡사한 내부 환경을 가진 어마어마한 크기의 길죽한 모양으로, 동체가 회전하면서 중력을 만들어내는 원리를 적용시켰고 더욱 기발한 것은 동력원으로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식이라 그 기나 긴 항해의 시간을 거치면서도 빛만 있다면 연료와 에너지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 만든 태양 전지판은 큰 범선이 펼친 돗처럼 아주 얇으면서도 엄청나게 큰 형태이다.

그러나 일이라는 게 원래 그렇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어려움이나 문제 없이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프로젝트 자체에서도 실험의 실패와 이견을 보이는 여러 의견들의 절충이 필요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어디까지나 사소한 문제들이다. 정작 보다 더 크고 심각한 문제는 자기들의 생각과 방법이 다른 사람들이나 집단 그리고 그들의 방식에 아주 적대적이거나 심지어 증오를 바탕으로 무차별적으로 실력 행사를 하는 세력들이 있고, 이는 상당히 위협적인 현실로 다가온다.

여기에는 항상 떡밥을 던지며 발단을 유도하는 언론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미디어, 시민단체 등 제각기 해당 집단이 가지는 손익의 잣대를 들이대고 그들만의 시각으로 판단하며 목소리를 높여가고 심지어 이들을 적으로 규정한 국가적인 차원의 제재와 탄압이 들어오는 시점에서 주인공과 또 함께 하기로 한 프론티어들은 결단을 내려야 하고, 그것은 어서 한시 바삐 이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를 성공적으로 떠난 후에도 작가의 상상력은 계속된다. 이 미지의 탐험가들에겐 이미 인류의 모든 기술과 역사 속에서 얻어진 교훈이 있기에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면서 이전 인류의 좋지 못했던 그리고 옳지 못했던 전철을 답습하지 않기 위한 방안을 마련코자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인류의 과오를 돌아본 모든 탑승자들이 합심하여 그러한 것들을 지켜나가면서 이들의 프로젝트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제도와 규정을 잘 정비했다 하더라도 인류의 유전자 속에 저장된 코드들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가 없다. 우주 항해 1세대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원만히 돌아갔지만 그들의 2세 그리고 그 후손들이 태어나면서 점점 처음의 원대했던 이상과 목적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언제부턴가 지구와 이전의 인류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전설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면서 오로지 그들의 목표만이 계속 후대로 전해지게 되었다. 그 사이 인류가 격어왔던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들이 우주선 내부를 계속 잠식해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희망은 없는 것일까.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마지막까지 그 예리한 상상력을 접지 않는다.

가끔 밤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우주를 생각해보는 동안 당면한 일들이나 세상사가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듯이 이 책을 읽으며 그 상황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동안에는 우리가 지금 신주단지처럼 붙잡고 늘어지는 돈, 권력, 명예, 종교, 인기, 각종 사회 전통적인 가치라는 것들이 결국 우리들 스스로가 키운 공룡이며 현재 그 허상들에 얼마나 얽매여 들어가 있는가를 한 번 뒤돌아보게 되었다.

 

패신저스(Passengers), 광활한 우주에서 현재와 미래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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