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9. 19:23

계시록을 모방하는 연쇄살인. `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 - 상 - 8점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열린책들

움베르토 에코는 언어 심볼 학자이면서도 여러편의 소설을 썼는데 주로 서양종교인 카톨릭에 관한 것들이다. 에코의 책은 일반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이 '장미의 이름'은 '푸코의 진자'에 비해서는 그리 어렵지 않다. 중세사회의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그 수도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약 3~4일 간에 일어나는 일이 전체의 내용이다.

이 책에서는 최근 '다빈치 코드'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비밀스런 집단 즉, '성당기사단' 이나 '프리메이슨'과 같은 결사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색다른 흥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종교에 대한 인간 내면의 잘못된 숭배,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인간의 좋지 못한 본성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추리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물론 지금도 충격적이지만) 그것도 제일 신성한 수도원 경내에서 벌어지는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이 소설의 발단이다. 여기에 연쇄살인의 방식이 요한게시록에 나와 있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이 아주 흥미로우며, 읽으면서 범인을 추리해 나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또 한 가지, 소설에서는 두 가지의 큰 사건이 복합적으로 벌어지는데, 위에 언급한 연쇄살인 외에 그 당시의 가장 큰 이슈이자 문제였던 이른바 '종교이단문제'가 등장한다.

때는 바야흐로 중세의 '암흑시대'... 정통과 이단이 공존하고, 마녀사냥이 빈번했으며 황제와 교황사이에 권력투쟁이 물밑에서 극심하던 시기였다. 과연 '정통'은 무엇이고 '이단'은 무엇이며, 그것을 판별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이 정통과 이단을 구별할 수 있으며, 이단이라고 해서 신을 대신해 인간의 생명을 빼았는 일을 자행하는 것이 정당한가?


권력이 센 쪽이 법이고 정통이며 힘있는 쪽이 진리의 가르침을 조용히 받아지녀 묵묵히 수행하고 사람들을 교화하는 일련의 사람들을 탄압하던 시기, 당시의 순진하고 영악하지 못했던 민중속에 독버섯처럼 파고들어 어줍잖은 설교와 교리를 들먹이며 자신이 마치 진짜 구세주가 된 양 착각속에 가짜 사도 행세를 하던 사이비들, 이들을 등에 업고 사람들을 등쳐 먹은 사기꾼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단 세력에 동참하여 결국 토벌대상이 된 못배우고 헐벗은 그래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불쌍한 민초들, 각기 나름대로의 신념에 따라 저마다의 수행을 실천하는 수행자들이 한데 뭉떵그러져서 지내던 시기에 교황의 세력은 자신들의 권위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오로지 이단심판과 집행이라는 방식을 고수하여 나갔다. 아마 이것이 오히려 반대급부를 일으켜 '악마숭배'를 교묘히 조장하게 하는 집단이 등장한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소설의 이단심판부분에서는 종교재판을 받던 사제가 궁지에 몰리자 악마를 찬송하는 기도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소설에서 묘사하는 수도원의 구조를 머리속으로 파악하거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특히, 가장 핵심이 되는 '장서관'은 그 구조가 미로여서 아마 '7번째 손님'이라는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해가 빠를 것인데, 여기가 이 소설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지금의 법의학이나 범죄수사방식, 여러가지 기술적인 관점에서보면 수사방식이나 문제해결방식이 다소 원시적이고 엉성한데 이것은 그 배경이 중세이기 때문에 이 점을 감안하고 소설을 읽어야한다.

장미의 이름 (상/ 양장)
국내도서
저자 :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 이윤기(Lee EyunKee)역
출판 : 열린책들 2006.02.01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