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8. 22:35

과학의 아포리즘, `슈뢰딩거의 고양이` - 에른스트 페터 피셔

슈뢰딩거의 고양이 - 8점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박규호 옮김/들녘

'슈뢰딩거의 고양이'부터 풀어나가면서 과학적 이론과 그것을 세상에 알린 인물이 엮어지며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물리학 뿐만 아니라 화학, 천문학, 생물학, 광학, 심리학을 거쳐 카오스 이론에까지 과학의 전반 분야를 다루면서 개별적인 분야의 이론을 그것을 제창한 인물과 결합하여 설명하고 있다. 책에서는 어려운 공식을 제시하거나 딱딱하고 지루한 설명이 아니라서 기본적인 과학적 지식과 논리적인 사고의 수준에서 읽기에 그다지 어려움은 없는 책이다. 특히 물리학 이외의 다른 과학분야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도 읽을 거리가 많이 들어 있다.

현재까지 과학적 발전은 일부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우리에게 많은 지식을 가져다 주었다. 물리학에서 그 지식은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의 지동설에서부터 뉴턴의 만유인력을 거쳐 이제 우주의 시공간적 특성(아인슈타인)에까지 이르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생명과학은 우리가 단순한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장구한 진화적 발전을 통해 두뇌를 얻어 말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습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혀주기도 했다.

우연과 적응을 통해서 긴 시간동안을 거쳐온 변화의 산물인 생명활동을 진화라고 볼때 우리는 현재에도 이 진화라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고, 이것은 비단 생명활동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 사회 전반의 현상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우리나라 정치?

어떤 일을 하다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나 피로도가 증가했을때 지속적인 집중을 유지하기 보다는 휴식을 취하는 편이 나중에 더 효율이 좋음을 여러번 경험하기도 했고 특히 컴퓨터 프로그래밍 작업을 할때 이러한 점이 더욱 두드러졌다. 더구나 풀리지 않는 문제,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당장 답을 얻을 수 없는 문제에 있어 잠을 충분히 잘 자고 난 다음에 별로 어렵지 않게 풀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상태에서 휴식과 꿈, 그리고 잠재의식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공감이 컸다.

영매 실비아 브라운은 이걸 두고, 저 세상 어딘가에서 우리를 도와주려는 존재들의 도움이라고 했는데, 그건 안 봐서 모르겠고 여튼 케쿨레라는 과학자는 이러한 현상의 덕을 잘 본 경우고,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에게 익숙한 벤젠의 탄소 고리구조를 이 과정을 통해서 발견해내는 업적을 달성했다.

리비히의 육수에서는 모든 고기의 영양분이 국물에 있다는 과학적인 결론으로 볼때 설렁탕이나 선지국, 사골곰국 등 우리의 국문화야말로 최고의 음식 반열에 올라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뜬금없이 먹고 싶어지기도 했다. 갑자기 배가 고프네..

우리라는 존재는 이러 저러한 화학물질과 신경전달물질들을 주고 받는 뉴런들과 뇌세포의 다발일 뿐이라는, 과학이 밝혀낸 일종의 허무함과 천문학, 상대성 이론, 양자 물리학이 도출하는 결론을 생각하다 보면 불교에서 논하는 것들과 많이 닮아있음을 계속 느끼게 된다. 게다가 지식이 증대될 수록 미래는 우리의 지식에 종속된다는 것 또한 하나의 역설이고 미래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예측하고, 짐작할 뿐.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결과가 모니터를 통해서 눈앞에 나타날때 그 엄청난 성취감과 기분 좋음은 실험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는 과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책에서는 그것을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허쉬의 천국' 이라고 표현했고, 조금 다른 방식을 찾는 델브뤼크와 같은 학자는 미지의 결과를 향해 가는 동안 느끼는 긴장감을 선택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가 반대론자들이 서서히 모두 소멸하고 그 진리에 익숙한 나중 세대가 등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새로운 시대로 바뀌는 시기 역시 기존의 머리가 굳어 버린 사람들의 구태가 없어지고,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이후의 세대가 성숙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양자도약에서 심리학과 조건반사를 지나 무어의 법칙까지 인류 역사의 산물이자 문화가 만들어낸 끊임없는 이야기인 현대 과학의 다양한 부문을 종횡무진 누빈 과학사가 에른스트 페터 피셔 덕분에 1901년 노벨 물리학상을 처음으로 받은 사람이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인걸 알았고, 더불어 노벨이 평생 독신이었으며 자식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베이컨이 자신이 주창한 이성과 실험으로 식료품을 더 오래 보관하는 방법을 알아내고 집 전체를 서늘하게 유지하려고 했었지만 그 때문에 결국 독감에 걸려 세상을 하직했다니 ㅡ.ㅡ 어쩌면 그 오래 보관하고 싶었던 식료품은 베이컨이 아니었을까..

책에서는 마지막으로 화두를 하나 던진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그것은 인식의 전환임과 동시에 주변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열린 사고로 편견이나 선입관을 배제하는 것만이 보다 발전된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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