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7. 16:24

"국정원 대선 개입은 반민주적 폭거" 교수들 시국선언 시작

한양·성균관·가톨릭대 등…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처음

국가정보원의 18대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각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시작됐다. 교수들이 대거 시국선언에 나선 것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과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이후 처음이다. 대학생들이 중심이 돼 시작된 국정원 규탄이 교수사회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한양대 교수 47명은 26일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민간인 사찰에 대한 시국선언문'을 내고 "국정원이 막대한 조직력과 정보력을 이용해 대선에 개입, 여론을 조작하고 경찰이 선거 개입을 축소·은폐한 것은 반민주적 폭거이자 '역사의 수레바퀴'를 군사독재정권 시대로 되돌리는 퇴행"이라고 밝혔다. 교수들은 "선거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근간인데, 국가기관이 나서 국민의 주권이 행사되는 선거에 개입하고 사건을 은폐하였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근본부터 파괴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 학생들이 26일 교내 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태를 규탄하며 의혹 없는 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 사법부의 공정한 판결을 요구했다. 이들은 "국정원 대선 개입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의 실상을 낱낱이 밝히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국정원 선거 개입에 대한 국정조사,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구속,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개혁을 요구했다.

가톨릭대 교수 16명도 성명서를 내고 "최근 밝혀진 국정원에 의한 정치 개입은 그나마 절차적으로 가능하던 한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퇴조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독재정권 때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던 국가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과 반인권적 행태를 근절하는 일은 1987년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모두가 바라던 목표였는데, 다시 이러한 반민주적 행위가 부활하고 있다"며 "이 사태를 처리하는 현 정부의 태도가 곧 우리 사회가 나아갈 정치적 방향과 이 땅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전해 갈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은 "현 정부는 이 사태를 과거 정부의 탓으로 돌리거나, 자신의 정권적 정당성을 위해 용인한다면 심각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며 "반민주주의적 행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정원 개혁 등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홍종선 교수(통계학) 등 교수 13명도 이날 시국선언을 통해,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은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중대사태이므로 검찰은 진상을 엄정하게 규명하고 청와대와 국회는 국정원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교수들은 "평화적 정권교체와 민주주의 진전에 따라 정보기관이 국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명제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이명박 정권에서 이 명제가 무너졌다"며 "정보기관은 다시 정권을 보위하는 친위대로 재편되었고, 국내 정치개입과 사찰, 공작이 일상화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정원은 검찰 수사로 은폐됐던 사실이 밝혀지자 '북방한계선(NLL)' 문제 같은 것을 작위적으로 부각시켜 이 쟁점의 국민적 확산을 막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국대 교수들도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30여명의 교수들이 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국대의 한 교수는 "국정원과 정부, 여당이 선거 불법개입의 수혜자로 부채의식을 갖기는커녕 선거 개입과 아무 상관없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 '경제위기론' 등 또 다른 속임수로 이번 사태를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와 중앙대, 건국대, 전남대 교수들도 관련 성명을 내기 위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 / 김한솔·이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