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5. 12:15

MB 정부 3년? 제2의 외환위기 숨겨왔다.


[인터뷰]김태동 교수 "구시대 환율.금리정책으로 부익부 빈익빈 낳아"

재무부

이달 초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국제경제 및 환율 정책 보고서'(Report to Congress on International Economic and Exchange Rate Policies) ⓒ미국 재무부

지난 2월 7일 미국 재무부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의 의미를 주목한 국내 언론은 거의 없었다. '국제경제 및 환율 정책 보고서'(Report to Congress on International Economic and Exchange Rate Policies)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08년 4/4분기 달러화 대비 한국 원화의 환율은 45% 폭등했고, 교역비중과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실질실효환율은 35% 상승했다. … (중략) … 2008년 7월부터 2009년 2월까지 8개월 동안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약 570억 달러 감소했고, 이는 전체 외환보유액의 22%에 달한다. 한국은 이 시기 선물환 시장에도 310억 달러를 풀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는 21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미 재무부 보고서로 인해 2년 이상 은폐되어 온 제2의 외환위기의 진상이 일부 밝혀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지난 2008년 말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불거진 세계경제위기 와중에 IMF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제2의 환란'을 맞았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미 2009년 초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토론방에 MB정부가 2008년 말 제2의 외환위기를 겪었다고 주장한 뒤 수차례 아고라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올린 바 있다. 미 재무부 보고서가 공개된 다음날인 8일에도 아고라에 '제2환란, 2년 이상 은폐 끝에 진상 드러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명박 정부 3년을 맞아 그간의 MB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인터뷰 주제에 앞서 김 교수는 '제2 환란' 얘기부터 꺼내들었다. 김 교수는 확신에 차 있었다.  "제2의 환란이라는 주제로 2009년 초에 세 번이나 아고라에 썼다. 다만 이번에는 미국이 그런 얘기를 안 하다가 이달 초 보고서를 통해 인정했고, 숫자가 구체적으로 나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통 상 경제학에서 환율이 33% 오르면 외환위기라고 한다. 미 재부무 보고서에서는 2008년 4분기 동안 45%폭등했다고 했는데, 한국이 외환위기였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외환보유고를 투입하는 등 여러가지 대책을 썼다. 그러다가 보유외환을 더 팔면 외환보유고가 심리적 지지선인 2천억 달러 밑으로 내려가니까 선물환까지 투입한 것이다."

김 교수는 환율 방어를 위해 전체 외환보유고의 22%(570억 달러)를 쏟아부은 것과 함께, 미 재무부 보고서에서 처음 드러난 '선물환 310억 달러 투입' 사실에 특히 주목했다. "외상 달러거래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정부는 선물환시장에서 달러선물환 매도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나 한국은행의 이름을 내놓고 하면 나쁜 소문이 나니까, 정부 말을 잘 듣는 시중은행이나 특수은행 계좌를 이용했을 것이다. 왜 이런 무리한 방법을 썼을까? 외환보유고 2천억 달러가 무너지면 시장의 불안심리는 더 악화되고, 외채의 만기연장비율은 더 땅에 떨어지게 된다. 아마 그것이 두려워 계약시점에는 달러가 필요없는 선물환계약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다급한 상황을 바로 '외환위기'라고 부른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당시 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97년 IMF외환위기에 빗대 2008년을 '제2의 외환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그러나 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심각한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았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그 환자가 병에 안 걸렸다고 볼 수 있을까? 일례로 지난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말레이시아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지 않았지만 우리는 말레이시아가 외환위기를 겪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지난 2008년 말 당시 IMF는 '돈을 꿔가라'는 신호를 보냈는데, 이명박 정부는 '낙인효과'가 두려웠기 때문에 관료들을 중심으로 이를 반대했다고 한다. YS때 IMF 구제금융받은 수치 때문에 신한국당이 정권을 잃었는데, 간판만 바꿔단 한나라당 정권 초년도에 또 IMF로 구제금융을 받는다는 건 정치적으로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찾아낸 채권자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B)였다. FRB와 3백억 달러 스왑 계약을 맺었고, 일본.중국과도 스왑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으로부터 스왑라인으로 돈을 꾼 것이 IMF로부터 꾼 것보다 현실적으로는 분명 덜 수치스럽다. '낙인효과'가 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치'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미국이라는 개별국가에게서 꾼 것이 여러 나라를 대표하는 IMF에서 꾼 것보다 더 수치스런 측면도 있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제2의 외환위기'를 불러온 데는 정책당국자들이 금리와 환율에 대해 몰이해 한 상태에서 수출대기업에만 유리한 고환율 정책을 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정책당국자들이 환율정책 세울 때 금리를 생각해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원인이 돼서 우리가 환란을 맞았다고 본다.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차관의 '최강 라인'이 정권 초기부터 환율 올리느라고 애를 썼는데 이런 정책으로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수출대기업들이었다. 이런 고환율 정책은 일종의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국가가 가난한 사람에게 뺐어서 부자에게 주는 셈이다. '환율주권'이라는 미명하에 부익부 빈익빈을 낳았다.

97년 IMF외환위기 때도 재벌.기득권의 압력에 밀려 제대로 개혁을 못했는데, 재벌과 소수 부자들만을 위하는 MB정부의 계급성은 재벌지배체제를 더 공고하게 만들었다. 이게 환율.금리정책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부터 조짐을 보이다 올해 초부터 본격화 된 물가 대란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그 원인이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환율.금리 정책에 있다고 짚었다.

"내려가야 할 환율을 올리니까 원화 유동성이 풀려 물가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도 더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이중, 삼중으로 물가를 높인 셈인데 물가를 해결하려면 금리를 높여 소비.투자수요를 줄여줘야 하는데, 한은이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초저금리정책을 썼다. 2008말 이후 몇 달 동안은 위기 때라 어쩔 수 없이 초저금리였다고 해도, 지난해 중반까지 내내 한 번도 금리를 안 올렸다. 2009년에는 한은이 금리를 올리려 할 때마다 정부가 구두개입을 했고, 지난해 초부터는 기재부 차관이 금통위 회의에 참석하고 한은 총재는 말을 잘 듣는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이 맡았다.

지난해 경기부양책으로 수요를 촉진시켜 작년에 성장률이 높아졌지만, 물가는 치솟았다. 환율로도 물가를 높이고, 초저금리로도 물가를 올려 놨다. 그래 놓고 공정위가 나서 물가 잡겠다는 건 '쇼'다. 주권자들이 무식하다는 전제 하에 '이만큼 무식하니 쇼를 해도 속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3년을 보낸 것이다."

김 교수는 끝으로 DJ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도 끝내 달성하지 못한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면서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97년 IMF위기, 지난 2008년 외환위기에 2003년 카드대란 까지 합하면 지난 10년 남짓 기간동안 한국경제에 3번의 위기가 왔었다. 경제위기가 이렇게 자주 발생하는 나라는 아시아에 우리나라밖에 없다. 왜 우리가 태국보다 환란이 자주 일어나는지 국민들이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다음에 국민의 심부름꾼을 바꿔도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게 후진국이다.

내년에 대선도 있는데 '진보'라고 한다면 복지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경제민주화' 를 위한 제도를 개혁하는 구호가 있어야 한다. 밑빠진 독을 못 보면서 '물이 없으니 퍼 넣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은 수준이 낮은 진보가 아닌가 싶다."

민중의 소리 / 조태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