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9. 16:09

메트로(Metro) 2033, 지하철 터널과 방사능 돌연변이의 공포.

메트로 2033 - 6점
드미트리 글루코프스키 지음, 김하락 옮김/제우미디어

이미 내용이 많이 알려진 이 소설은 인류 최대의 실수이자 재앙인 핵전쟁으로 모든 것이 소멸한 후 대참화를 가까스로 피한 극소수의 사람들이 모스크바 지하철로 몰려들어 방사능 쩌는 지상으로는 두 번 다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한채 지하생활을 하게 된지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각 지하철 역들은 하나의 작은 도시를 이루고, 역과 역 사이에는 동맹과 반목, 협력과 전투, 무역과 평화협정 등이 공존하고 있다.

핵으로 모든 것이 망했다고는 해도 이미 문명이 많이 발달되어 있었던 덕분인지 바로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지는 않았으나 각종 물자를 비롯하여 전기, 식량, 의약품 등은 언제나 부족했고, 그 외에도 여러모로 매우 불편한 것은 피할 수 없다. 특이한 건 이미 그 용도가 쓸모없어진 기존의 화폐 대신 칼라슈니코프 소총에 사용하는 총알이 돈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또한 역사마다 초소에 무장한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어 겨우 지하철 한 코스를 이동할 뿐인데도 여권이나 통행허가증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각 역들을 이어주는 어두운 공간인 어두컴컴한 터널은 온갖 괴물들이 진을 치고 있는 지상 못지않게 위험한 지역이며 여기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기도 하여 지나가는 사람이 흔적도 없이 실종되고는 함흥차사맹키로 감감 무소식이 되기 일쑤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각종 괴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양산되며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급기야 언제부턴가 매우 날쌘 움직임을 보이고 괴력을 발휘하는 검은 피부의 괴물 돌연변이들이 지상으로부터 습격을 해오기 시작했고, 소문을 타고 돼지만큼 커진 방사능 부작용의 쥐떼들이 마치 흐르는 용암처럼 대거 역사들을 습격해 닥치는대로 휩쓸어버린 사건도 있었다. 그렇다면 만약 방사능에 살아남은 돌연변이 바퀴벌레는 얼마나 커질까. 생각하기조차 싫다... 15cm? 응~, 하지마~ 30cm..?

계속되는 검은 존재들의 침입으로 메트로에서 이름 있는 차를 생산하고 있는 비데엔차(또는 비데엔하. 우리 말이 아니므로 대충~) 역 자체의 존폐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평소 메트로와 지상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소년 `아르티옴`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모험의 기회가 주어진다.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는 능력으로 위험을 비껴가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끝에 메트로를 한바쿠 돌아 다시 자신이 살던 역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어드벤처가 펼쳐지는데 당연하지만 열차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방독면을 쓰고 각종 보호장비에 중무장을 하고서 목숨걸고 지상으로 나가 필요한 물품을 구해오는 사람들을 `스토커`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선망의 눈길과 영웅적인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극도로 불확실한 분위기 속에서 일어나는 이해하지 못할 일들은 모두 방사능 때문이라고 해두자. 책의 맨 뒷부분에는 모스크바 지하철 메트로의 노선도가 그려져 있어 책을 보면서 각 역들과 코스를 비교해보며 읽으면 이야기가 한결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모스크바에 관광을 가자마자 어렵지 않게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출간 후 인기를 얻은 작품은 현재 후속편인 메트로 2034도 나왔는데 2033과는 이야기의 연계성이 없지만 2033에서 실종되어 생사를 알지 못했던 등장인물이 다시 등장해 세바스토폴역을 시작으로 링 라인인 한자동맹과 툴역 사이에서 일어난 전염병에 대처하며 이전과는 정반대 지역에서 새로운 코스를 오가며 벌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편에서 얼떨결에 등떠밀려 모험에 나섰던 소년영웅 아르티옴은 나오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나서 같은 제목으로 출시된 FPS 게임 메트로 2033을 해보기로 했다. 역시 한여름 무더위가 한창일때 심야에 즐기는 공포게임만한 피서도 없죠. 서평만큼 게임평도 좋아 그래픽은 PC에서 풀옵으로 돌리기 힘들만큼 고퀄이고, 책의 내용과 비교해가며 거기에 나왔던 지하철 역들과 터널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일것 같습니다. 같은 공포장르인 게임 피어(F.E.A.R)의 확장팩 `출구 지점(Extraction Point)`에도 지하철 역과 터널을 거쳐가야 되는 코스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