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의 파리통신] 파리 온 한국 대통령, 무엇을 얻었나
목수정 | 작가 · 파리 거주
지난주 한국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다. 2박3일의 짧은 일정으로 찾아온 한국의 국가원수를 맞이하는 프랑스의 태도는 뜨겁지 않았다. 인터뷰는 르피가로의 한국주재원이 유럽 방문 직전 했던 것이 전부였고, 극소수의 언론만이 한국 대통령의 방불을 언급하고 있었다. 간략한 개인사와 함께 대부분 언론이 하나같이 지적하고 있는 사항은 부정선거 스캔들. 경제지 레제코는 ‘국정원의 트위터로 흙탕물 튀긴 한국 대통령’이란 제목으로 국정원, 군의 조직적 개입뿐 아니라 국정원 수사팀에서 제외됐고, 수사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한 윤석열 검사의 이야기까지 상세히 다루었다.
또한 시사주간지 엑스프레스는 ‘박근혜에 대해 알아야 할 다섯가지’라는 제목으로 부모가 모두 총으로 죽은 비극적 인생, 독재자 아버지의 그림자, 윤창중 대변인의 섹스스캔들, 선거부정 스캔들 등을 기사로 다뤘다. 르몽드만이 경제인들과의 만남을 스케치했는데, 박근혜는 프랑스 기업인들 앞에서 한 연설을 통해 한국의 공공부문 시장을 외국기업에 개방할 것과 프랑스와의 자유무역을 위해 한국의 몇가지 무역장벽을 없앨 것을 약속했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반면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펼쳐진 재불한인 집회에는 열띤 기운이 감돌았다. 100여명 안팎이 모인 소규모 집회였지만,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닙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내건 이 집회에는 유학생, 교민, 관광객들뿐 아니라,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온 국정원, 대사관 직원들, 그리고 한국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부 프랑스인들까지 한데 모여 긴장감과 박진감 속에서 진행됐다.
3·15 부정선거에 항거해 4·19혁명에 참가한 바 있던 70대의 한 교민은 “민주주의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기는 어려우며, 대부분 세찬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그러나 끊임없이 새로운 싹을 틔우려는 도전만이 비로소 민주주의의 당찬 줄기를 키워갈 수 있다”며 젊은 학생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독려했다. 여행을 왔던 한 중년의 관광객은 혁명의 도시, 파리코뮌의 도시, 68의 도시 파리에서 새로운 촛불을 이어나가자고 외치기도 했다.
둘째 날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불문학을 전공하는 한 유학생이 르피가로지에 나온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나라입니다”라고 한 박근혜의 말을 인용하자 장내에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해직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를 불법이라 통보하고, 국가기관이 선거에 동원되어 여론을 조작해도 이에 대한 수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나라가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나라냐고 반문하며, 나라 안에서 국민을 속이던 박근혜가 이제는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 한다며 분노를 표했다.
철학을 공부하는 또 다른 유학생은 “토요일에 에펠탑 앞에서 집회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언론에서 접하며 댓글들을 읽어봤는데, ‘이 집회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전라도 사람이며, 참석한 학생들은 모두 북한으로부터 돈을 받은 학생들’이라는 글들이 실려 있었다. 그걸 보고 정부는 단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공무원과 민간인들을 동원하는 것뿐 아니라, 이젠 완전히 일상적으로 국민들의 정신을 썩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집회를 지켜보던 한 프랑스 경찰이 다가와 묻는다. 진짜 이런 엄청난 선거부정이 일어난 거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이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프랑스에선 절대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한국대사관이 이 집회를 거부해줄 것을 요청했던 사실도 알게 했다. 집회의 자유를 막을 아무 명분도 없다며, 그 요청을 거부한 것은 프랑스 경찰이었다.
올랑드는 무슨 생각으로 한국 대통령을 만난 것 같으냐고 묻자 올랑드가 원하는 건 ‘시장’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르몽드가 보도한 것처럼, 프랑스가 한국 대통령을 맞이한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한국의 공공부문 시장의 개방과 추가적인 무역장벽 제거였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통령이 이 방문에서 얻으려고 한 것, 그래서 얻은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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