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0. 22:42

1997의 IMF 영역을 통과한 `응답하라 1994` 18화

많은 사람들에게 1997년은 1996년을 비롯해 그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1996년이 끝나고 해가 바뀌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 1997년,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던 어느 봄날 아침에 타고 가던 버스의 스피커에서 나온 뉴스는 우리나라 경제가 심상치 않다라는 의견과 아니다, 아무 이상없고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라는 엇갈린 주장들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이런 쪽은 뭣같은 조선일보가 필두로 나섰더랬죠.

<실성 연기의 대가로 등극한 모습 ㅋㅋ과 당시 유행했던 엠씨 스퀘어. 알파파를 방출해준대나..>

그걸 들으면서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오던데 '그래, 엥간히 우리 경제가 튼튼하기도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얼마전까지 산업현장에서 다가오던 그 살벌한 전조를 몸으로 느끼고, 피부로 체감했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회사를 출근하면 일단 일이 없어서 책상에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기가 일쑤였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있으려니 왜 그렇게 눈치가 보이던지. 그렇게 할 일이 없으니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는 게 흔한 일이었죠. 자판기 커피와 함께..

어린 나이라 아는 게 별로 없었던 관계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젯밤 저쪽 공장 사장 자살했다. 쿵~... 또 다음날 출근하면 그 옆 공장 사장 야반도주했다... 헉~ 그 다음날은 그 옆 회사 부도 등등 자고나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같은 지역의 근처 소기업과 공장들 소식이 날마다 충격을 더해주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도, 뭣도 아닌 조선일보는 IMF 구제금융을 받기 전날까지 우리경제가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었으니 이런 친일방가 쓰레기는 폐간만이 답입니다. 그나마 그땐 위기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무슨 `괴담`이나 `음모` 또는 `종북`이니 `좌빨`이라 하면서 몰아붙이는 색깔놀이나 종북몰이가 없었던게 좋았다고나 할까.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려버린 아시아 4마리의 용에서...>

그 후, 시간이 흘러 4년이 지나고 한 번 김해 공단지역을 가보게 되었는데 광활한 논밭 사이 사이에 들어선 공장들이 좀 을씨년스러워 보여 물어봤더니 죄다 비어있는 건물들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IMF가 영세기업들에게는 말 그대로 사형선고였었고, 그때 모두 폐업을 하고 남아 있던 건물들 중에서 어떤 공장은 불에 전부 타버린채 흉물로 방치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90년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던 취직이 잘 안된다는 소리가 그때부턴 하늘의 별따기로 바뀌었고, 더불어 군입대 혹은 대학원으로의 진학이 급격히 늘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분위기 대반전의 Before와 After>

경제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일단 의사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건강 조기검진과 예방의 차원에서 되짚어 보거나 살펴보는 게 우선적으로 요구되고 정말 필요한 일입니다만, 김영삼 정부는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가 귀뜸해줄 때까지 우리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난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기가 막힌 노릇이죠. 이게 새누리의 빛나는 업적입니다. 그 이후에도 정신 못차리고, 몰래 불법으로 선거 비자금을 트럭채로 나르던 일명 `차떼기`까지 하다 딱 걸려 당이 공중분해되기 일보 직전에 박근혜를 전면에 내세워 길거리에 천막치고, 동정표 구걸 읍소전략으로 연명하며 겨우 겨우 살아났죠.

문제는 그때까지 경제발전의 과실을 누리던 중산층과 그 이하 서민층 상당수가 말도 못할 정도의 참담한 몰락과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며 길거리에 나앉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했으며 가정이 해체되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풍비박산 나버린 가계들이 부지기수였다는 점입니다. 이때의 파장으로 아직까지 그 여파에서 못 벗어난 사람들도 많고, 겨우 다시 재기를 한 사람들도 있었겠으나 이어 터진 2000년대 초반의 카드 대란과 2008, 2011년의 금융위기 파도에는 또 어떻게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어쩌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수도 있지만 `돈` 그러니까 `쩐`이 제일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렸습니다. 돈이 없으면 사람 구실은 커녕 인간 취급도 못받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금권이 최고고, 돈만 있으면 두려울것도, 못할 것도 없는 황금만능 시대. 가진 자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며 `사다리 걷어차기`로 계층을 나누었고, `구조 조정`이라는 허울이 우리 사회를 강타한 결과 평생직장과 고용안정이라는 개념과 복지라는 안전망은 오늘날 결국 없어졌고, 비정규직 천국과 최저임금의 파트타임 시급만 가지고 따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이 나라에도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넘쳐 흐르게 된 것이죠. 이는 금융위기와 IMF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에서 시간이 흐르며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렇게 돈의 곁으로 가까이 가기 위해 모두가 박 터지는 무한 경쟁에 뛰어들어 저마다 스펙 쌓기 경쟁은 기본이고, 필요하다면 얼굴까지 뜯어 고치는 것과 유흥업계에 투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부~자 되겠다는 일념으로 뛰어든 부동산 판떼기... 정말 엄청난 열풍이었지요. 웬만한 월급쟁이가 몇 년을 허리띠 졸라매고 모아야 만져볼 수 있는 돈을 단 1년 만에 그것도 앉아서 버는 뚱땡이 뱃살 아줌씨들 많았습니다.

IMF 시절 대다수의 국민들이 고통속에서 버티고 있을때 밤에 룸쌀롱에 모여 "IMF여, 영원하라~!" 를 외치면서 양주 처마신 놈들이 있었듯이 부동산도 언제까지나 그런 상황이 계속될 줄 알았겠지만 이제 상황은 변했고, 그 탐욕의 시간을 결산할 눈부신 빚잔치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세는 이미 결정되었으며 단지 시간 조절 즉, 타이밍의 문제일 뿐입니다. 지금은 살얼음판이죠. 앞으로 기대됩니다. 또, 그때가 되면 할 말이 있지만 그건 다음에...

 

<영화 후기> 국가부도의 날과 ’97년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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