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슬픔들을 승화시킨 `바리데기`
바리데기 - 황석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는 이북에서 극심한 기근으로 인민들이 참혹하게 굶주리던 1990년대 중반에서부터 세계의 역사를 바꾸며 그 흐름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9.11사태를 반환점으로 런던 지하철역 테러가 일어났던 2000년대 중반의 10여년이라는 시간이 들어가 있다.
주인공 `바리`는 북쪽 어느 지역마을에서 막둥이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모진 세파를 겪으며 성장기에 접어들어서도 마주친 혹독한 풍상 속에서 세상과 맞닥들여 나간다. 하지만, 조상이 돌봐주고 하늘이 무심치 않음인가... 보이지 않는 투명한 보호외투를 입은 것처럼 이 아이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이런 세상의 몸서리처지는 끔찍함 속에서도 나름의 생을 이어나간다.
오랜 수행자가 극심한 수련을 통해 얻어지는 능력을 타고난 축복을 받은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고국을 떠나 인생역정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또 그만큼 다양한 문화를 접해 나가고, 그 여정에서 선한 인연들을 맺어가는 바리. 그러나, 이 세상과 운명이란 역시 얄궃은 것이라서 좋은 것이 마냥 계속되지는 않는 것이지..
... 온 세상 사람들 수테 만났갔구나?
베라벨 사람을 다 만나서.
바리 너 모르구 있댄? 니가 옛말하문서 갈체주었잰이.
너 가는 길에 부탁하는 사람덜 많이 만났다구.
제 괴로움이 무엇 때문인지 자꾸 물었지비.
응, 바리공주님이 저승가서 알아가주구 오갔다구 기랬대서.
오라, 기러니까디 대답을 준비해둬야 하갔구나.
저승을 가야 알지.
거저 살다보문 대답이 다 나오게 돼 이서.
말 다르구, 생김새 다르구, 사는데가 다른데두?
할머니가 주름이 오글오글하게 가만히 웃는다.
거럼, 세상이나 한 사람이나 다 같다. 모자라구 병들구 미욱하고 욕심 많구.
내가 덧붙인다. 가엾지.
우리 바리가 용쿠나! 가엾은걸 알문 대답을 알게 된다니까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원인과 그 상관관계를 알기에는 많이 부족한 존재들이다. 여기에 대한 답들 중의 하나로 `신의 뜻은 알 수 없다`라든지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라는 애매한 문구만 되풀이 하곤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분명한 건 이 세상엔 온갖 종류의 슬픔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바리는 현실과 세상의 경계를 넘어서 저 알 수는 없지만 어딘가 존재하는 곳으로 가 거기서 이 세상의 모든 슬픔들을 만나고, 그 이유가 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을 해소하는지를 알기위해 큰 살풀이 한 마당을 겪는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함께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세파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존재들이다. 가끔씩 무게 중심을 잡고 서 보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 역시 조금 더 큰 배였음을 알게된다. 어쨌든 세파를 헤쳐나가는 삶은 계속되겠지만 그저 이제는 바리가 더는 아무 걱정없이 행복하기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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