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17. 15:24

MB 독도발언, 요미우리에 직접 물어보니

[검증] 요미우리 "재판을 앞두고 있어서..." 아사히 기자는 "불쾌하다"

1년 8개월전 <요미우리신문>에 인용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발언을 둘러싼 공방전이 치열하다.

당시 <요미우리신문>은 홋카이도 도야코 서밋에서 후쿠다 야스오 총리와 이명박 대통령이 호텔 로비에서 나눈 대화를 기초로 '다케시마 문제의 명기 - [고유]라는 표현 빼는 것에 자민당 내에서도 불만'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08년 7월 14일 밤 10시 34분에 인터넷판에 먼저 올라왔고, 다음날 조간지면에도 실렸다. 당시 일본 문부과학성은 중학 교과서 학습해설서에 독도가 일본땅임을 주장하는 내용을 넣을 방침을 굳혔지만, 국내외의 반발을 고려해 '고유'라는 표현을 빼기로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요미우리신문>는 문부과학성의 이 방침에 대해 자민당 내에서도 비판여론이 있다는 내용을 기사화하면서 그 안에 후쿠다 전 총리와 이명박 대통령과의 독도 관련 대화를 넣었다.

당시 후쿠다 전 총리는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해설서에 넣어야 한다'는 문부과학성 방침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하면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현)라고 쓰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라고 답변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었다.    
이 부분에 관한 내용을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진은 일본어 원문기사, 밑은 한국어로 번역한 것).

▲ 갈색부분이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한 두 정상의 대화내용. 그런데 갈색부분 바로 앞에 "관계자에 의하면..."이라는 귀절이 보인다.  ©요미우리신문 화면 캡쳐/JPNews

"(전략) 지난 9일 이 대통령은 홋카이도 도야코 서밋 회장의 호텔에서 후쿠다 총리와 서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우려의 뜻을 표명했다. 관계자에 의하면 수상이 '다케시마라고 쓰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하자,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라고 요구해 왔다고 한다(하략)."(2008년 7월 14일 밤 10시 34분 최초보도)

<요미우리신문>의 기사가 국내언론에 소개되자 청와대 측은 즉시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사실무근이다"는 취지의 코멘트를 냈다. 하루에 1천만부나 찍어내는, 일본을 대표하는 신문의 보도와 대한민국 최고권력기관의 말이 달랐던 것이다. 기자는 이 기사의 진위를 확인해보기 위해 당시 <요미우리신문>에 근무했던 모 기자(09년 퇴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부서가 그 기사를 쓰지는 않았지만 요미우리신문사는 편집시스템이 엄격하고, 특히 이런 구체적인 대화가 들어가는 기사일 경우 면밀하게 팩트를 체크하기 때문에 이 기사 자체가 엉터리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다만 그는 "기사내용만으로 보면 우리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하면서 "두 정상의 발언 내용을 제공한 관계자가 거짓말을 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기사 자체가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사의 진위여부는 청와대 측과 요미우리신문사가 더 이상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아 유야무야되는 듯 했다. 하지만 한국시민 1886명은 청와대의 사실무근 발언을 근거로 "요미우리가 전혀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함에 따라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며 해당 신문사를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근 17여개월간 지속된 이 재판은 올해 3월 17일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주 <국민일보>가 "요미우리신문사는 이 재판을 위한 증거자료로 '해당기사의 내용은 사실에 근거해 작성했다'는 취지의 준비서면을 지난 9일 서울지방법원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만약 요미우리신문사의 주장이 맞다면 청와대 측이 국내 및 일본언론, 국민들을 상대로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는 말이 된다. 보통 중차대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 사안을 1차 보도한 매체는 3월 15일 현재 <국민일보> 밖에 없다. 이후 이 신문의 기사를 인용보도한 매체는 몇 군데 나왔지만 정작 재판당사자인 요미우리신문사의 입장은 전무하다.

<제이피뉴스>는 요미우리신문사에 직접 질문서를 보내 공식답변을 들어보기로 했다. 요미우리신문사 홍보담당자는 지난 3월 1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물어보신 사안 및 질문하고 싶은 것들을 질문지 양식으로 해서 팩스로 보내주십시오. 검토후에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이피뉴스>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질문을 요미우리 신문사에 보냈다.
질문1. 재판의 발단이 된 08년 7월 14일의 해당기사는 사실(팩트)에 근거한 기사인가? 즉 이명박 대통령은 실제로 저러한 발언을 했나?
질문2. 한국서울중앙지법에 사실이라는 취지의 준비서면을 제출했다고 들었다. 언제 어떤 경위로 제출하게 되었나?
질문3. 준비서면의 내용을, 필요에 따라 그 전문 혹은 요약문을 공개할 수 있나?
질문4. <요미우리신문>의 기사내용이 사실이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 청와대의 거짓말로 인해 일본을 대표하는 언론사 요미우리신문사의 명예가 훼손된 셈이 된다. 청와대에 대해 항의문 등을 보낼 계획은 있는가?

▲ <제이피뉴스>가 <요미우리신문사> 앞으로 보낸 질문서  ©박철현/JPNews

팩스를 보낸 후 다시 요미우리신문사에 전화를 걸자 앞서 전화통화를 했던 홍보담당자 H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서 이런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못할 수도 있다. 상사와 협의한 이후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 협조해 드리고 싶지만 양해해 달라."(3월 12일 오후)

이번 주 월요일(15일) 다시 연락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며 통화 자체가 힘들어졌다. 일본 언론계 사정에 밝은 저널리스트 모 씨(닛케이 기자출신)는 <제이피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요미우리가 저렇게 나오면 취재를 거부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요미우리신문사나 니혼게이자이신문사는 원래 취재하기가 힘들다. 전화통화도 안될 때가 많다. 왜냐면 전화통화한 내용이 그대로 상대방 매체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답변 팩스가 오지 않으면 사실상 (취재를) 거부했다고 보면 된다."

요미우리 입장에서는 판결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문제가 된 이 기사는 여러모로 의혹이 존재한다. 우선 <요미우리신문>은 해당기사에서 과장, 거짓보도를 하지 않는 중립적인 매체로 손꼽힌다. 같은 보수우익 매체에 속하는 <산케이신문>이 북한관련보도에서 총련측 입장을 취재하지 않은 채 총련내부 관계자의 말이라며 무작정 써 버리는 식의 보도를, <요미우리신문>은 하지 않는다.

또한 앞서 언급한 전직 <요미우리신문> 기자의 말처럼 엄격한 편집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각 기자들도 우수한 엘리트 출신이 많다. 이 신문과 함께 일본 3대 일간지에 속하는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이 간혹가다 표절, 날조기사 소동을 일으키는 문제적 기사를 내는 것에 비해 <요미우리신문>은 적어도 거짓기사는 써 내지 않는다는 신뢰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요미우리신문>도 독도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한 기획기사의 경우 사실(Fact) 보도임에도 불구하고 팩트인지 아닌지 확인이 안되는 부분을 넣기도 한다. 이번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 기사는 <요미우리신문>의 보수우익적 성향을 드러내는 기획기사다. <요미우리신문>은 이 기사를 통해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표현을 넣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자기네들 입으로 주장하지 않을 뿐이다. 당시 집권여당인 자민당 의원들의 불만섞인 목소리를 소개하면서 간접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후쿠다 전 총리와 이명박 대통령의 대화 역시 공식적 자리에서의 대화가 아니라 "도야코 서밋이 열리는 호텔내 로비에서 서서 나눈 대화를 익명의 관계자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일본언론은 취재원 보호 원칙을 확실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미우리신문>은 설령 한국 재판부의 명령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이 관계자가 누구인지 절대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의혹이 가는 점은 <요미우리신문>이 제출했다는 준비서면에서 "당시 아사히신문 등 다른 매체들도 비슷한 보도를 했다"라는 부분이다. 기자는 08년 당시 이 발언을 소개하면서 <교도통신>,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도쿄신문> 등 거의 모든 종합일간지를 훑었었다. <요미우리신문>의 준비서면에서 직접 거론한 것처럼 <아사히신문>도 이 발언에 대한 보도를 했다. 하지만 <아사히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시기가 나쁘다'며 우려의 뜻을 표했다" 정도로 그쳤다. <아사히신문> 현직기자 모 씨는 <제이피뉴스>의 취재에 "요미우리신문사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다음과 같이 불만을 토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기가 나쁘다'는 말을 했다는 건 전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과거의 역사적 상황 등을 전부 포함시켜 추상적인 의미에서 (이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던 것으로 안다. '지금은 곤란하니까 기다려 달라'는, 그러니까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한 것처럼 이야기했는지 아닌지는 사실 확실치 않다. 그것보다 요미우리는 가만히 있는 우리(아사히)를 갑자기 왜 끌어들이는지 이해가 안 간다. 상당히 불쾌하다."

실제 <아사히신문>은 같은 날 인터넷판에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라는 발언을 소개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직접 취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자' 말을 참고자료로만 활용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거대 매스컴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발언'을 직접적이며 구체적으로 소개한 매체는 오직 <요미우리신문> 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결국 이번 재판은 <요미우리신문>에 코멘트를 제공한 '관계자'가 열쇠를 쥐고 있다. 이 관계자가 스스로 등장해 '폭탄선언'이라도 하던가, 아니면 당시 두 정상의 대화를 들었을 청와대 관계자가 '양심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이번 재판은 어정쩡한 결론으로 끝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재판부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왜냐면 원고측이 패할 경우, 즉 요미우리신문사의 기사가 진실하다는 결과가 나오게 되면 청와대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 요미우리신문사가 거짓보도를 했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요미우리신문사가 가만 있을 리 없다. 요미우리신문사는 자사의 오시가미(押し紙, 신문사가 부수를 늘리기 위해 배달지국에 자사 신문을 사게끔 하는 행위) 문제를 보도한 저널리스트 구로야부 데쓰야 씨와의 재판에서 몇번이고 패소했지만 지난 4년간 줄곧 항소, 상고를 되풀이한 전력이 있을만큼 '명예'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JPNews / 박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