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9. 21:20

"조상 친일행위 사죄" 용기낸 후손들

민족문제연구소에 반성글 보내고 후원금 내기도
친일사전 보고대회, 보수단체와 한때 옥신각신

'3권 145쪽, 이준식(1894~?) 군수'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으로 지난 8년간 < 친일인명사전 > 편찬 과정을 지켜봤던 이윤(65)씨는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 묘소 앞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에 참가해 사전을 보자마자 '이준식 편'을 찾았다. 그가 이씨의 할아버지이기 때문이다.

"1894년생으로 1936년 11월~40년 9월 충북 음성군수로 재직했다. 중일전쟁 발발 시 국방헌금과 애국기 헌납자금 모금 등과 같은 전시 업무에 적극 힘썼다." 이씨는 사전 편찬 과정에서 할아버지 관련 내용을 볼 수 있었지만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일부러 보지 않았다. "전쟁 때 일제에 협력했다는 내용이 보태거나 뺀 것 없이 제가 생각한 대로 차분하고 건조하게 기술돼 있네요."

이씨는 이미 2000년부터 < 친일인명사전 > 제작 계획을 듣고 "어두운 과거를 규명하고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 전폭적인 성원을 보낸다"며 민족문제연구소에 회원으로 가입했고, 매달 후원금을 내왔다. 그는 대학생 시절 60년대 한일 회담 반대 투쟁에 참여하면서 차츰 역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는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라면 잘못에 대해 승복하고 사죄를 통해 문제점을 시정하는 게 당연하다"며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 화제가 되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씁쓸하다"고 말했다.

< 친일인명사전 > 발간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전 속 인물의 후손들이 보인 거센 반발은 큰 걸림돌이었다. 후손들은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 등을 법원에 냈으며, 갖가지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연좌제가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했다. 그러나 후손들 중에서도 이씨와 같이 친일을 반성하고 책임지려 한 이들이 있었다.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과 중추원 참의를 지낸 한상룡씨의 후손 한진규(29·재미)씨는 2005년 9월 "조상들의 업적과 함께 친일행동도 함께 후손이 책임지는 것이 조상들의 노고를 후손이 나눠가지는 것"이라며 민족문제연구소에 감사의 뜻을 전자우편으로 전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열린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는 잔치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애초 보고대회는 숙명여대 아트센터에서 열릴 계획이었으나 숙명여대 쪽이 "보수단체와의 충돌 위험 등이 있다"며 대관을 거부해, 참가자들은 백범 김구 선생 묘역으로 장소를 옮겨 대회를 진행했다. 앞서 이날 낮 12시에는 '박정희 바로 알리기 국민모임' 외 20여개 보수 시민단체가 숙명여대 정문 앞에서 "역사를 날조하는 민족문제연구소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한때 양쪽 일부 회원은 서로 옥신각신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편 < 친일인명사전 > 의 일반 시판은 다음달 초부터 시작될 예정이나 전화로 구매 예약은 가능하다. 가격은 30만원. 문의 (02)969-0226.

한겨례 / 김민경 권오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