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 - 댄 브라운 소설
The Da Vinci Code (Mass Market Paperback, Movie Tie-in Edition) - 댄 브라운 지음/Anchor |
The Da Vinci Code
저자 : 댄 브라운
이미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를 읽었던 터라 비밀집단이나 카톨릭의 숨겨진 역사를 알게 되는데서 오는 생경한 호기심이나 신선한 충격은 덜했다. 오히려, 이러한 비밀집단에 대해서는 푸코의 진자가 더 많은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 이 두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소설의 전개 방식을 들 수 있다.
`푸코의 진자`는 일정한 그리고, 예측 가능한 흐름을 전면 거부하는 듯 한마디로 일관성 없는 형식을 가지고 중구난방식으로 풀어가는 경향을 보인다면 이 `다빈치 코드`는 소설의 흐름에 있어 그 형식이 잘 짜여진 한 편의 각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영화화하기에도 아주 적합하게 보인다. 마침,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하니 기대를 해본다. 이 `랭던` 교수 역할에 `톰 행크스`가 배역을 맡았다는 기사를 봤는데 개인적으로 `해리슨 포드`가 적절한 배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디아나 존스를 너무 재미있게 봤나? ^^ 어쨌거나 해리슨 포드도 많이 늙었다.
그렇다고, `푸코의 진자`가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보다 더 많은 이야기거리 또한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다빈치 코드`는 잘 짜여진 한편의 정형시와 같다면 `푸코의 진자`는 마치 자유시나 산문시(혹은 사설시조?)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기존의 카톨릭에 대한 통념에 정면 배치되는 내용이라 그 이념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충격적이고, 심각한 주제인 `성배(Holy Grail)`와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a)`를 소재로 삼고 있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는 호기심을 동반한 관심의 대상으로 베스트 셀러에 올라 빛을 봤지만, 카톨릭이나 기독교 내부에서는 엄청난 반향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문제작이다.
초반 작품이 전개되는 키 포인트는 `Aanagram`이다. 이는 알파벳 위치 교환에 의한 단어의 재배열로 마치 한자를 파자에 의해 풀어 해석한다든지 우리의 고대 신지문자나 녹도문자를 해석하는 것처럼 신기함과 함께 소설의 내용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구실을 한다. 하나의 실마리를 풀면 곧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고 또 그것을 풀어나가는 긴박함과 흥미진진함이 이어지는데 꼭 전주가 끝나자마자 바로 하이톤으로 올라간 노래가 쭉~ 그대로 끝까지 이어져 가는 듯한 이야기 전개에다가 예측을 불허하는 진행이 좀처럼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은 주로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에 마치 읽는 독자가 그 대화에 참여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 점은 '푸코의 진자'에서와 동일한 점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과연 진정으로 어떻게 결말이 날 것인가가 끝까지 궁금해지는 아주 훌륭한 소설이다.
얼마전 영국 대법원에서 열린 이 소설의 내용이 말하는 것에 대한 재판(저자나 이 소설 자체에 대한 재판이 아니다.)에서 기독교 단체와 역사학자 및 종교학자들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법원 측이 내린 판결은 그 내용이 맞으며, 역사적으로 증거가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양심적인 역사학자들과 진실을 원하는 종교학자들이 내놓은 증거들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이때, 수녀들은 울었으며, 사제들은 옷을 찢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당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여기엔 기독교 관련 세력들이 벌인 모종의 음모가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얼마전까지 출판되던 예수님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담은 책들 - `예수의 잃어버린 가르침`, `토마 복음서` 등 - 이 지금은 구하기 힘든 것도 이상한 점이다.
카톨릭이나 기독교 측에선 성경외 그러한 책들은 신빙성이 떨어지고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전면 부정하고 있는 입장인데, 사실 성경은 내가 생각해도 '불완전'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원래 `성경`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인 '오디오'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쓰여진 `비디오` 즉, `기록문서`로 남겨진 결과물이 되었다.
또한 그 수많은 문서들 중 일부의 문서만 취사선택되어 또 많은 손들을 거치면서 `첨삭`되고 `번역`되어진 그야말로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책'인데 그 과정에서 본래의 뜻이 하나라도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더우기, 지금의 성경에 포함되지 못하고 최근에 발견된 문서들은 하나같이 부정되는데 그럼 도대체 무엇이 증명된 것이고 무엇이 증명되지 않은 것이란 말인가? 또한 그들은 예수님을 완전 티끌 하나 없는 `신성` 그 자체로 더우기 어떠한 흠 하나라도 있으면 절대 안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 성인이시긴 하지만 인간으로 33년을 이 땅에서 지내셨다. 예수님에게 사랑하는 이성이 있었든 결혼을 했든 자식을 낳았든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게 왜? 그럼 안되나? 내가 예수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서도 아니고, 많은 기적을 보여서도 아니며, 부활해서도 아니다.
헌데, 정작 본질을 봐야할 종교계가 단지 그 소인배적 그릇으로 본 껍데기적 시각만을 열렬히 쫓고 있는 그러면서도 자기들만의 생각외에 다른 것들을 무시하는 듯한 자세는 조소와 함께 한심하기 그지 없음을 느끼게 한다. 책에서도 나왔지만 고등학교 때 기독교 신자였던 친구로부터도 카톨릭에 이교도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음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이전부터 소설에서 말하는 내용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세월이 갈수록 그 내용에 마음이 기우는 것은 단지 흥미나 바램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책을 통해 또, 여러 매체를 통해 제시된 증거들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디까지나 만일이라는 단서를 달고서, 그 내용이 공식적으로 사실로 인정된다면 2000년 이상 지속되던 기존의 교회와 카톨릭 교리는 완전히 개떡된다. 순 사기였으니 말이다. 성경 또한 전면 재편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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