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16. 08:39

천안함, 미 핵잠수함과의 충돌설 부상! 언론기사

통일뉴스 기사 -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0627

합동조사단이 결정적인 증거물이라고 하면서 꺼내놓은 어뢰추진기 잔해가 가짜임을 말해주는 반대 증거들이 속속 나오는 바람에, 지금 어뢰추진기 잔해 가짜설은 가설이 아니라 차츰 진실로 굳어지는 중이다. 어뢰추진기 잔해 가짜설과 밀접히 연관된 가설이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이다. 누리꾼들과 인터넷 논객들 사이에 널리 퍼진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은, 백령도 앞바다에서 작전 중이던 미국 잠수함이 천안함과 충돌하는 바람에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가설이다.

이 글에서 그 가설을 다루는 까닭은, 천안함이 어떤 다른 물체와 충돌하여 침수되는 과정에서 함체의 무게균형이 깨지고 그 결과 절단되었다는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정황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천안함 함교 유리창이 깨지지 않고 멀쩡한 상태로 인양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2010년 6월 8일 국방부가 누리꾼 55명을 초청하여 천안함 함체를 보여준 현장에서 촬영한 절단면 사진에는 놀랍게도 기다란 전구가 두 개 달린 형광등이 깨지지 않고 절단면 윗부분에 걸려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1200t급 함체를 두 동강 낼 정도로 엄청난 폭발충격이 가해졌다면 당연히 깨졌어야 할 유리창과 형광등이 원상태로 남아있는 것은, 천안함이 어뢰폭발 충격으로 절단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참고 : 아래 사진은 2004년 국내에서 실행된 어뢰 수중폭발 실험에서 배가 두 동강 나는 모습 : 프레시안 기사와 동영상 보기 클릭] => 과연 유리창과 형광등이 온전히 남아있을 상황인지??

더욱이 합동참모본부가 천안함 사고를 상부에 보고하면서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조작하였다는 사실이 최근 감사원 결과로 드러나는 바람에, 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조사결과는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다. 천안함 사건은 사상 최대의 의혹사건이 된 것이다.

미국 잠수함 충돌사고는 드문 일이 아니다

천안함이 위로 솟구쳐오르며 파손될 만큼 엄청난 충격을 준 커다란 물체는 무엇이었을까? 천안함이 암초에 부딪쳐 그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지만, 암초충돌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안함 절단면에 남겨진 충격흔적은 함체 아래쪽에서 윗쪽으로 충격이 가해졌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만일 암초에 부딪쳤다면, 함체가 위로 솟구치지 않으며 충격흔적도 상향각으로 남지 않는다. [...]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천안함을 침몰시킨 충격은 잠수함이 천안함 함체 아래쪽에서 충돌하면서 발생하였다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1200t 급 초계함을 들이받아 두 동강으로 절단시킬 큰 충격을 일으킨 잠수함이라면 천안함보다 몇 배나 더 큰 잠수함이었을 것이다. 원래 잠수함 함체는 엄청난 해저수압에 견딜 수 있게 설계, 제작되었기 때문에 수상함에 비해 훨씬 더 견고하고 강하다. 그래서 잠수함과 수상함이 충돌하는 경우, 수상함이 함체 손상을 훨씬 더 많이 입게 된다.

천안함보다 몇 배나 더 큰 잠수함을 백령도 앞바다에 출동시킬 나라는 미국밖에는 없다. [...] 미국의 대형 잠수함이 수심이 낮은 서해에서 잠항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미국 잠수함은 서해에서 잠항할 뿐 아니라 서해안에 바짝 접근하기도 한다. 미국 군사전문지 <글로벌 밀리터리> 2009년 10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2009년 7월 서해에 출동한 미국 잠수함이 서해위성발사기지가 있는 평안북도 철산군 앞바다에 "북코리아의 턱밑까지 가까이 (close to North Korea under the nose)" 접근하여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수심이 약 50m가 도는 천안함 사고현장에서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이 잠항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첨단설비를 갖춘 미국 잠수함이 충돌사고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미국 잠수함 충돌사고는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이를테면, 2005년 1월 9일 괌에서 남쪽으로 560km 떨어진 해역을 잠항하던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샌프란시스코호가 해저암초를 들이받는 바람에 잠수함 앞부분이 깨져 승조원 한 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다쳤다.

2009년 3월 19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반잠수 상태로 항해하던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하트포드호가 미국의 24,900t 급 초대형 상륙수송함 뉴올리언즈호와 충돌했다. 그 사고로 하트포드호는 함체 상단부가 크게 깨지고, 좌현 앞부분에 달려있는 잠수함 날개가 부러졌으며, 뉴올리언즈호는 함체 밑부분에 4.9 x 5.5m 크기의 파공이 생겼고, 안정기 두 대가 손상을 입었고, 연료저장고가 깨지는 바람에 디젤유 95,000리터가 바다에 쏟아졌다.

미국 잠수함은 우리나라 동해, 서해, 남해에서 돌아가며 충돌사고를 냈다. 1998년 2월 부산 영도에서 9.6km 떨어진 해상에서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라홀라호가 어선 영창호와 충돌했다. 2002년 10월 2일 밤에도 미국군이 주도하는 한미합동훈련에 동원된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헬레나호가 어선 두 척과 충돌하였다. 2004년 10월 12일에는 미국군 주도로 동해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하던 중에 그 훈련에 동원된 한국 해군 특수선박이 잠수함과 충돌한 것으로 보이는 사고로 침몰하였으나, 군 당국은 진상을 밝히지 않고 묻어버렸다. 이런 과거경험을 살펴보면, 천안함이 미국 잠수함과 충돌하여 침몰되었다는 가설이 뜬소문만은 아닐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

[참고  : mbn 뉴스 화면]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에 나타난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주한미군사령부 대변인 제인 크릭튼 대령이 전자우편을 통해 전해준 정보를 인용한 AP통신의 2010년 6월 5일자 보도에 따르면, 천안함 사고 당시 서해에서는 미국군이 주도하는 한미연합군 대북침공연습인 "독수리 훈련 (Foal Eagle)"의 일환으로 대잠수함 훈련이 벌어졌다고 한다. 크릭튼 대령은 AP통신 기자에게 대잠수함 훈련에 "미국 구축함 두 척과 다른 함선들"이 투입되었다고 했다. 그가 언급한 미국 구축함 두 척은 7함대 소속 9200t 급 미사일구축함 래슨호와 8300t 급 미사일구축함 커티스 윌버호다. 미국 미사일구축함은 길이가 1km나 되는 예인식 수중음파탐지기를 함미에 달고 항해하는데, 바닷속이 잔잔하고 해수온도가 고를 경우 160km 밖에서 기동하는 잠수함도 찾아낼 수 있다.

[...]

대잠수함 훈련은, 인민군 잠수함으로 가정하고 이동표적물로 삼은 한국군 잠수함을 수상함, 잠수함, 초계기가 공중, 수상, 수중에서 추적, 격파하는 입체적인 훈련이다. 미군 해군보도국이 2010년 3월 23일에 보도한 자료에 의하면, 인민군 잠수함으로 가정하고 이동표적물 역할을 한 잠수함은 최무선함이다. [...]

한반도에서 대북침공작전 연습을 기획하고 주도하는 쪽은 미국군이므로, 대잠수함 훈련도 당연히 미국군이 기획하고 주도한다. 그런데 대잠수함 훈련을 기획하고 주도한 미국군이 자국 잠수함을 한 척도 동원하지 않고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했다는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의 발언은 말이 되지 않는다.

미국 해군 보도국이 2010년 3월 23일 경상남도 진해 발로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7함대 소속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콜럼비아호(SSN-771)가 2010년 3월 18일부터 22일까지 진해에 머문 뒤 1285t급 디젤 잠수함 최무선함과 함께 서해에서 실시되는 한미합동훈련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잠수함이 현장에 없었다는 원태재 대변인의 말은 거짓이다.

[참고 : 3월 23일부터의 폴 이글 훈련에 참여한 미 핵잠수함 콜럼비아함의 모습]

-출처 : [파이낸스투데이] "미 핵잠 콜럼비아함은 어디로 사라졌나?" (기사보기 클릭)



대잠수함 훈련에 동원된 콜럼비아호는 어떤 잠수함일까? "신속공격 잠수함(fast attack submarine)"으로 알려진 그 잠수함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다방면적인 전함들 중 하나"라고 격찬하는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공격, 대잠수함 및 대수상함 추격, 정찰과 정보수집, 특수전 병력 침투 등 다양한 연안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콜럼비아호는 서해 연안에서 작전을 수행하기에 적합하게 설계된 잠수함이다.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날, 콜럼비아호가 대잠수함 훈련에 투입된 것은 명백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을 사실로 입증하기 어렵다. 대잠수함 훈련에 투입되었으나 천안함과 충돌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콜럼비아호가 천안함과 충돌하였음을 입증할만한 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이 가설이 아니라 사실이 된다. 이 민감한 논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을 요구한다.

최무선함 추적하며 백령도로 북상한 콜럼비아호

주한미군사령부 대변인이 AP 통신 기자에 전한 바에 따르면, 대잠수함 훈련이 벌어진 곳은 천안함 사고현장에서 남쪽으로 120km 떨어진 해상이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말하면, 충남 태안군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이다. 이 해상은 서해 해상수송로를 지키는 전략요충지다. 한국군은 원래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에서 각종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해오고 있다.

백령도와 격결비열도 사이의 거리는 가깝지 않다.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백령도 앞바다와 대잠수함 훈련이 실시된 격력비열도 부근 해상은 120km나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미 해군 보도국은 왜 백령도 "인근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진행중이었다고 보도했을까?

대잠수함 훈련은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에서 맴도는 형식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에서 시작된 훈련은, 백령도 쪽으로 북상하는 이동표적물, 다시 말해 인민군 잠수함으로 가정한 최무선함을 추적, 격파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남측 언론에 보도된 유사한 사례를 보면, 2004년 10월 10일부터 미국군 주도로 실시한 대잠수함 훈련도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까지 북상하면서 실시되었다. 대잠수함 훈련의 범위가 북방한계선 바로 남쪽 해상까지 북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천안함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콜럼비아호가 최무선함을 추적하면서 백령도 북쪽으로 북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미 해군 보도국은 백령도 "인근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하는 중이었다고 보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콜럼비아호는 백령도 앞바다 쪽으로 잠항, 북상하고 있었고, 같은 시각 천안함은 백령도 앞바다에서 대북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충돌하였을 개연성을 높여준다.

주한미군사령부 대변인은 AP 통신 기자에게 "미한 대잠수함 훈련은 3월 25일밤 10시에 시작되어 이튿날 밤 9시에 끝났다"고 전했다. 대잠수함 훈련을 밤 10시에 시작했다는 말은 심야훈련 위주로 진행했다는 뜻이다. 또한 그는 "그 훈련은 천안함에서 일어난 폭발(blast aboard the Cheonan-제(webster) 생각엔 'blast'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explosion of the ship'(배의 폭발)이라 하지 않고 꼭 '폭발'로 해석되지 않을 수도 있는 단어 'blast'를 썼습니다. 게다가 '배 위에서의(aboard the ship)' 충격파라니, 어뢰폭발과는 달리 배는 뭔가 멀쩡했다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맨 위 사진과 같은 어뢰폭발로 인한 반파의 경우 'aboard'라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겠죠.) 때문에 종결되었다"고 전했다. [...]

2010년 3월 26일 밤 9시, 다시 말해 천안함 사고가 발생하기 22분 전에 대잠수함 훈련이 끝난 뒤, (사고는 9시와 9시 22분(15분?) 두 차례에 걸쳐 있었던 것?) 훈련을 마친 미국 잠수함 콜럼비아호는 어디로 갔을까? 격렬비열도 인근 해상에서 백령도 쪽으로 북상한 최무선함을 추적, 격파하는 훈련이었으므로, 그 훈련을 마친 밤 9시에 콜럼비아호는 당연히 백령도 앞바다에 도착해 있었을 것이다. 세 가지 요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긴장 속에 진행되던 대잠수함 훈련이 9시에 끝났으니, 그때부터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은 휴식에 들어갔을 것이다. 천안함 사고 당시 자기들이 운동실에 있었다거나 빨래를 하고 있었다거나 외부와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었다는 생존 승조원들의 진술은, 그들이 휴식시간에 방심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콜럼비아호 승조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3월 26일밤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긴장을 풀고 방심하던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백령도 앞바다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충돌 사고가 일어났을 개연성을 크게 높여준다. (덧붙여 천안함이 사고당일 밤에서야 해당 해역에 배치되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출처: 통일뉴스 "천안함 침몰에 관련된 몇 가지 사건들" 클릭-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연 천안함 승조원들이 그날 밤 훈련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처음부터 희생양으로 갖다 배치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함.)

둘째, 사고해역은 수심이 50m 정도다. 그런 바다에서 콜럼비아호는 당연히 해수면 가까이 올라가서 잠항한다. 잠수함이 해수면 가까이 올라가서 잠항하던 수상함과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셋째, 천안함 함체 밑에는 수중음파탐지기(Sonar)가 설치되어 있는데, 천안함은 왜 콜럼비아호가 접근하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미 진주항 해군조선소 공보실이 2009년 10월 27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잠수함 하와이호가 2008년 9월 12일부터 26일까지 함체표면을 보강하는 공사를 받았다고 한다. 잠수함 함체에 특수한 함체 처리 타일을 덧씌운 것인데, 적함의 수중음파탐지기에서 발사된 음파를 흡수하는 스텔스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하와이호만이 아니라 콜럼비아호도 스텔스 기능 보강공사를 받았을 것이다. 콜럼비아호가 천안함에 접근할 때, 천안함 수중음파탐지기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까닭은 콜럼비아호 함체가 스텔스 기능 타일로 덮여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 : 위에서 말한 "수중음파탐지기 흡수용 타일"로 덮여있는 미 핵잠의 모습. 사진속 핵잠은 콜럼비아함이 아닌 다른 오하이오급 핵잠]

(참고로 신상철 의원은 천안함 함체 밑바닥에 처음에는 무엇인가에 긁힌 자국이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그 이후 그 자국이 없어졌고, 합조단이 '거즈로 함체 전체를 닦았다'는 기사가 난 바 있는 것으로 미뤄 아래와 같은 소나탐지 방지용 고무타일에 긁힌 자국이 아니었나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 [아고라글] 미 잠수함 외벽의 소나방지용 '흡음타일'에 관한 글 (클릭)
- [연합뉴스] "합조단, 함체 전체 '거즈'로 닦았다" (기사보기 클릭)



왜 9시 15분을 9시 45분으로 고쳐놓았을까?

[...] 합참본부는 해군작전사령부가 보고한 사고발생 시각을 왜 30분이나 늦추려고 가필하였을까? 군법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보고서 조작행위는, 처벌 위험을 감수할만한 중대한 이유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 만약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충돌했다면, 한국군 합참본부는 사고발생 시각을 뒤로 늦추려고 가필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고발생 시각을 뒤로 늦춰야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으로 출동하는 시각을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에 되도록 늦게 나타나야 천안함과 충돌한 콜럼비아호가 상황을 서둘러 수습하고 사고현장을 빠져나갈 시간적 여유를 얻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해군 고속정 다섯 척이 사고현장에 나타난 시각은 밤 10시 32분이었고, 해경 501함이 사고현장에 나타난 시각은 밤 10시 38분이었다. 사고가 일어난 때로부터 무려 1시간 10분이 지난 뒤에 사고현장에 나타난, 매우 이례적인 늑장대응이었다. 합동참모본부가 사고발생 시각을 조작한 것과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에 늦게 나타난 것은, 천안함과 충돌한 콜럼비아호가 상황을 서둘러 수습하고 사고현장을 빠져나갈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을까?

특이한 현상에 대한 의문은 어떻게 풀리는가?

만일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충돌하였다면, 천안함만 절단되어 침몰한 것이 아니라 콜럼비아호도 전망탑이나 상단부 등에 큰 손상을 입었을 것이고, 잠수함에 타고 있던 승조원이 부상당했거나 사망하였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미국은 해저에 가라앉은 잠수함 파편들을 수거하고 잠수함 승조원 시신을 인양했어야 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 그러한 행동을 취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정보는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국은 사고현장 일대를 차단하여 충돌사고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유지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사고현장을 차단하려면 사고발생 위치를 은폐하고, 언론의 취재활동을 다른 곳으로 유인해야 한다. (저자는 여기서 함수 위치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하는데, 꼭 그렇지 않아도 국방부장관이 국회질의에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까지 말한 함미의 위치를 찾는답시고 2박 3일이나 보낸 것만으로도 시간벌기를 위한 은폐의혹은 드러난다고 본다. '69시간 드립'은 천안함 실종자들의 생존가능 시간이 아니라 제3 부표에서의 작업을 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내가 궁금한 건 가스터빈이 발견된 위치와 제3 부표의 위치인데, 혹시 두 위치의 좌표를 표시한 지도 갖고 계신 분은 댓글 달아주세요. -webster) 실제로 언론의 취재활동은 3월 27일부터 함수가 침몰한 엉뚱한 곳에서 벌어졌고, 그 사이에 미국은 (함미) 사고현장에서 콜럼비아호 파편을 수거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함미 위치와 제 3부표 위치가 다르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듯하다.)

둘째, 미국은 제 7함대 전력을 사고현장에 집중 투입하여 잠수함 파편을 수거했어야 했다.

(1) 제7 함대 사령관 홍보실이 2010년 4월 19일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사고현장 지휘관으로 임명된 7함대 상륙군사령관 해군 소장 리처드 랜돌트는 사고현장에 투입한 상륙함 하퍼스 페리호에 승선하여 사건수습을 총지휘했다. 해군 소장 피트 구마타오타오가 주한미해군 사령관으로 있는데도, 상륙군 사령관을 현장 지휘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사고현장 지휘권이 제7함대 상륙군 사령관에서 주한미해군 사령관으로 넘어간 때는 2010년 4월 17일이다. (단순히 한국군의 천안함 인양작업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면) 주한미해군 사령관이 있는데도 굳이 (제7함대) 상륙군사령관을 별도로 현장 지휘관에 임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7함대 소속인) 콜럼비아호가 충돌사고를 냈기 때문에 그런 특별대책을 취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2) 제 7함대 사령관 홍보실이 2010년 4월 14일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7함대 사령부는 사고현장에 16,600t 급 상륙함 하퍼스 페리호 승조원 419명, 3282t 급 구조함 샐버호 승조원 100명, 미사일순양함 샤일로호 승조원 400명, 미사일구축함 커티스 윌버호 승조원 281명, 미사일구축함 래슨호 승조원 320명, 제25 해상 전투헬기대대 제6 파견대 병력 33명, 제 5 폭발물 처리기동단 산하 제 501 소대 소속 기술병력 12명, 제 1 잠수구조원 기동단 소속 잠수병력 16명, 제 11 상륙대대 일부 병력, 민간잠수사 26명을 투입했다고 한다.

(만약 단순히 한국군의 천안함 인양작업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면) 1600명이 넘는 방대한 병력과 각종 군사장비들을 사고현장에 집중 투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콜럼비아호가 충돌사고를 냈기 때문에 그런 특별 대책을 취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3) 제 7함대 사령부가 사고현장에 투입한 병력들 가운데 주목해야 할 대상은 제 25 해상전투헬기 대대 병력이다.  7함대 사령부 홍보실이 2010년 6월 7일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헬기조종사들은 사고현장에 25일 동안 머물면서 총 250회 이상 출격했다고 한다. 사고현장에서 그들이 조종한 헬기는 씨호크라고 부르는 다목적 군용헬기다. 바다속에서 잔해를 건져올리는 인양작업에 왜 군용헬기를 그처럼 많이 출격시켰을까? (만약 천안함 잔해 인양작업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군용헬기를 그처럼 집중 투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 사진 : 출처 : KBS]



[사진 : 출처 : 제7함대 홈피 - 원문 보러가기 -클릭]



[사진 : 출처 - 제 7함대 홈피 - 원문 기사 보러가기 -클릭]



셋째
, 미국은 사고현장에서 콜럼비아호 승조원 시신을 인양하고, 애도행동을 취했어야 한다.

(1) 사고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하던 한준위 준위가 3월 30일에 순직하였고, 그의 영결식은 4월 3일에 해군장으로 거행되었다. 그런데 제 7함대 사령부 홍보실이 2010년 4월 3일 서해발로 보도한 사진기사는, 고 한준위 준위 영결식이 거행되던 날 사고현장의 특이한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영결식 당일 오전 10시부터 1분 동안 사고현장에서 모든 미국 전함들이 애도 경적을 일제히 울렸다고 하면서, 현장 지휘관 리처드 랜돌트, 하퍼스 페리호 함장 에드 톰슨, 제 11 상륙대대 함장 마크 웨버가 애도 경적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갑판에 나가 바다쪽을 향해 도열하여 거수경례를 하는 현장사진을 게재하였다. 보도기사에는 그런 애도행동이 고 한준호 준위를 위한 것이었다고 씌여 있지만, 미국군이 사망하지 않았는데 외국군 (1인의) 사망에 그처럼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진 출처 : 제 7함대 홈피 -원문 보러가기 클릭]



(2) 제 7함대 사령부 홍보실이 2010년 4월 6일 보도한 현장사진들 가운데는 사고현장에서 다목적 군용헬기가 들것을 긴 줄에 매달아 해수면에 내리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 출처 : 제 7함대 홈피 -원문 보러가기 클릭]



또한 제 7함대 사령부 홍보실이 4월 14일 보도한 현장사진 가운데는 적십자 표식을 한 미국군 의료헬기가 하퍼스 페리호 갑판에 착륙하고, 적십자 표식을 한 병사가 갑판에서 대기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 출처 : 제 7함대 홈피 - 원문 보러가기 클릭]



이 사진들은 사망한 콜럼비아호 승조원 시신을 바다에서 인양해 지휘함으로 수송하는 장면을 찍은 것으로 해석된다.

(3) 주한미국대사관은 2010년 4월 26일부터 29일까지 닷새 동안 조기를 게양하였다. 그 기간을 천안함 희생자 국가애도기간으로 선포한 이명박 정부는 영결식이 거행된 4월 29일 하루만 각급 관공서에서 조기를 게양했는데, 이례적으로 주한미국대사관은 닷새 동안이나 조기를 내리지 않았다. 미국의 국기관련 규정에 따르면, 다른 나라의 고위관리가 사망했을 때, 대통령의 지시나 외교관행에 따라 조기를 게양한다. 고 한준호 준위는 고위관리가 아니므로 위의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다. 위의 규정에서 조기를 게양하는 다른 경우는, 미국군이 복무중 사망했을 때다. 외국군이 사망했을 때 조기를 게양한다는 조항은 없다. 주한미국대사관이 보여준 매우 이례적인 애도행동은,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의 충돌사고로 미국군이 사망한 경우에만 있을 수 있는 행동이다.



미 해군 보도국이 2010년 5월 4일 하와이 진주항 발로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콜럼비아호는 서태평양에서 여섯 달 동안 수행한 작전을 마치고 2010년 5월 3일 하와이에 있는 모항인 진주항 히컴 공동기지에 복귀했다고 한다. 그 잠수함이 진주항 히컴 공동기지를 떠난 날이 2009년 11월 3일이었으므로, 예정된 복귀날짜에 맞춰 정확히 여섯달만에 모항으로 돌아간 것이다.

미 해군 보도국은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3월 26일부터 모항에 복귀한 5월 3일까지 37일간 콜럼비아호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언급하지 않았다. 천안함과 충돌하여 손상을 입은 콜럼비아호를 괌 조선소에서 수리한 뒤 하와이로 복귀하였음을 숨긴 것은 아닐까?


출처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048258&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